같은 결과를 두고도 누구는 만족하고 누구는 실망한다.
결과 자체가 달라서가 아니라, 그 결과를 어떤 기준으로 맞이했는지가 다르기 때문일 수 있다.
다만 이것도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법칙은 아니다.
기준을 두고 결과를 비교하는 방식 자체가 사람마다 다르게 작동하는 하나의 사고방식일 뿐이다.
담배보다는 낫다는 생각
평소 담배를 피워 폐가 약해진 사람 중에는 미세먼지 가득한 날을 마주해도 '이 정도면 담배보단 낫다'고 여기기도 한다.
반대로 같은 상황에서 '폐가 이미 약해진 채로 미세먼지까지 마신다'며 더 불안해하는 사람도 있다.
폐 상태도 그날의 미세먼지 농도도 똑같은데, 그걸 받아들이는 방식은 사람에 따라 갈린다.
등급이 아니라 낙차
평소 3등급인 학생이 스스로를 5등급 수준이라 낮춰 잡는다면, 실제로 4등급을 받았을 때 올랐다며 만족할 수 있다.
반면 같은 학생이라도 처음부터 3등급을 기대했다면 같은 4등급 앞에서 무너졌을 것이다.
다만 이것도 그 학생이 애초에 자기 성적을 기준과 비교해서 받아들이는 성향일 때 이야기다.
모두가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니다
어떤 사람은 기준을 낮게 잡아도 결국 실망한다.
4등급이라는 숫자 자체가 마음에 안 들면, 그 전에 뭘 기대했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기준선을 조정하라는 조언 자체가 별 효과가 없다.
결과를 기준과의 차이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결과를 그 자체로 절대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자신이 둘 중 어느 쪽에 가까운 사람인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다르다.
낮추는 것과 잃는 것 사이
기준과 비교해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여기서 한 가지 위험은 남는다.
지나치게 낮춘 기대는 위안이 아니라 자기 과소평가가 되고, 애써 노력할 이유 자체를 갉아먹을 수 있다.
5등급 수준이라 낮춰 잡은 학생이 계속 그 기준에 머무른다면, 만족은 쉬워지는 대신 더 나아갈 이유는 옅어진다.
그러니 필요한 건 기준을 무조건 낮추는 게 아니라, 지금 내가 어떤 기준으로 세상을 재고 있는지, 그리고 애초에 내가 기준과 비교해서 세상을 받아들이는 사람인지부터 알아차리는 일이다.
기준선은 대부분 의식하지 못한 채로 그냥 주어진다.
그걸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같은 하루를 다르게 겪을 여지가 생긴다.
출처
흡연장에서 회사 동료와 당연히 내뱉는 말의 당연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 순간
